“오래된 문제와 새로운 기술, 위대한 생각이 모여 혁신을 만든다”

정하경 | 기사입력 2018/08/29 [12:53]

“오래된 문제와 새로운 기술, 위대한 생각이 모여 혁신을 만든다”

정하경 | 입력 : 2018/08/29 [12:53]

 

덴마크 북부 유틀란트반도에 위치한 소도시 브뢴더슬레유(Brønderslev). 지난봄, 1만2000여 명이 조용히 살아가던 이곳에 별안간 글로벌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됐다. 청정에너지만으로 난방과 전력을 공급하는 세계 최초 도시가 된 덕분이다.

 

청정에너지만으로 난방∙전력 공급하는 최초 도시

 

지난 3월 20일<현지 시각> 라르스 릴레홀트(Lars Lilleholt) 덴마크 에너지∙시설∙기후부장관을 비롯한 관련 부서 고위급 인사들은 브뢴더슬레유 수도사업소에 위치한 첨단 태양에너지 복합 활용 시스템 가동 버튼을 눌렀다. 덴마크 정부가 4500만 유로(약 582억 원)를 투자한 이 시스템은 브뢴더슬레유시 전체에 청정에너지를 공급한다. 기술 지원은 덴마크 소재 재생에너지 전문 기업 알보르히 융축 태양에너지 발전소가 맡았다. 자타공인 ‘대안에너지 개발 선진국’ 덴마크, 그중에서도 브뢴더슬레유가 선구자적 존재로 급부상하는 순간이었다.

 

대안에너지(alternative energy), 청정에너지(clean energy), 신재생에너지(new and renewable Energy), 그린에너지(green energy)….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차세대 에너지 개발의 필요성은 1980년대 이후 줄곧 강조돼왔다. 지난 8일자 스페셜 리포트 “정보통신기술과 기후변화, 그 오묘한 함수관계”에서 이미 한 차례 살펴본 것처럼 IPCC[1] 같은 전문기구를 통해 지구온난화 과정이 관측되는가 하면, 지구온난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석탄·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fossil fuel)가 일찌감치 지목되기도 했다.

 

더욱이 최근 지구온난화 현상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뚜렷이 인지되면서 에너지 절약과 새로운 에너지 개발의 필요성은 전에 없이 강력히 촉구되고 있다. (겨우 한숨 돌리긴 했지만) 지난여름 북반구 대부분 지역의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폭염과 그에 앞선 혹한이 모두 지구온난화 현상에 기인했단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지구의 1년은 앞으로 한동안 ‘더 더운 여름’과 ‘더 추운 겨울’ 사이를 오갈 전망이다. 신재생 에너지를 실용화 단계까지 끌어와 화석연료 사용을 크게 절감한 덴마크의 행보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에너지 절약도, 신규 에너지원 개발도 ‘세계 정상’

 

“지구온난화 현상은 지구를 넘어 우주 전체와 관련되는 주기적 과정인 것 같다.” 지구온난화 현상을 둘러싼 최근 전문가들의 견해다.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는 왜 자꾸 심해지는 걸까? 지구가 전체적으로 더워지면서 위도가 극권(polar cycle)보다 낮은 지역의 더운 공기가 극권으로 올라오고, 극권에 갇혀있던 냉기가 저위도 지역으로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대기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여름이면 극지방에서 내려오는 ‘찬 대기 덩어리'와 바다 쪽에서 올라오는 ‘더운 대기 덩어리’가 팽팽하게 맞서며 (더운 대기를 품은) 고기압 상태가 지속되는 건 그 때문이다.

▲ 빙하 핵 분석으로 파악한 기온 변화(파란색)와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출처: 미국 국가대양대기행정처∙국가기후데이터센터)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짧게는 수만 년, 길게는 수십만 년을 주기로 반복돼왔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온난화 현상은 예전보다 더 힘들어질 잠재성과 더 나아질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인류는 산업화 시대가 도래한 후부터 쉼 없이, 엄청난 규모로 화석연료를 사용해왔다. 따라서 화석연료 남용이 온실효과 발생의 주범이라고 하면 지구의 기후 환경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반면,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해 무지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인류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일부나마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인간이 노력을 기울이면 상황을 어느 정도 개선시킬 수 있단 얘기다.

 

지구온난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는 게 하나, 온실효과를 일으키지 않는 신규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게 다른 하나다. 덴마크는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지구온난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덕에 두 범주에서 모두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건 그 과정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의 비중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단 사실이다.

 

빌딩∙기업∙도시 할 것 없이 ‘에너지와 ICT의 결합’

 

사실 ‘ICT가 에너지 절약에 기여할 수 있다’는 명제는 그리 새로운 게 아니다. 직관적 이해를 돕기 위해 손쉽게 들 수 있는 예가 ‘스마트빌딩’ 개념이다. 냉∙난방이나 환기와 관련해선 △온도(와 사람 존재 여부) 감지를 통한 냉∙난방 패널 자동 조절 △진공 열 차단 패널 개폐 △창문 내 반사 필름 막 개폐 △실내 공기 질 감지를 통한 환기 장치 자동 조절 등의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 조명에 드는 에너지 역시 ICT로 크게 절감될 수 있다. △LED 조명 도입 △공실(空室) 여부나 태양광 감지 통한 조명 자동 조절 등이 대표적 예다.

 

교통∙산업 분야에서도 ICT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에너지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산업 장비를 자동화해 꼭 필요한 에너지만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동차 공회전 방지 장치 등에 응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스마트 미터링[2] ’이나 ‘스마트 그리드[3] ’ 같은 기술도 에너지를 아끼는 측면에서의 기여도가 큰 편이다.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덴마크는 노력과 (국민∙정부의) 의식 수준, 성과 등 모든 측면에서 최고 성과를 내왔다. 덴마크 친환경 비즈니스 컨설팅 기업 코펜하겐클린테크클러스터[4] 가 펴낸 보고서 ‘덴마크의 그린 스마트빌딩’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었던 덴마크 소재 219개 기업 가운데 85%가 “지구 환경 보호 측면에서나 수익 창출 측면에서나 사옥을 스마트 빌딩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 (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즈) 


스마트빌딩이 지구온난화 현상을 완화시켜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건물을 스마트빌딩으로 바꾼다 해서 지구온난화 현상이 곧바로 누그러뜨려지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덴마크에선 스마트빌딩 구축 노력에 더해 지역사회, 아니 국가 전체를 기후변화 방지 노력에 동참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다양한 규모로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외곽 항구에 자리 잡은 ‘UN시티(UN City)’<위 사진>다.

 

2005년 설계, 2013년 완공된 이 공간은 UN 임직원 1500명이 근무하는 곳으로 2개 캠퍼스로 이뤄져 있다. 2015년 덴마크 비영리단체 스테이트오브그린[5] 이 발표한 ‘스마트빌딩 백서’에 따르면 UN시티에선 화석연료가 쓰이지 않는다. 효율성이 높은 대안에너지를 100% 사용, 동일 규모 빌딩에 비해 에너지 사용량이 최소 55% 적게 든다. 그뿐 아니다. 빗물을 저장했다 화장실 변기 내릴 때 쓰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 양을 줄임으로써 전체 물 사용량 역시 동일 규모 빌딩 대비 60% 아꼈다. UN시티 완공 당시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UN시티는 인류가 원하는 미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효율에 최적화된 사무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에너지 절감 전략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에너지를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초기 개발비가 많이 드는 건 단점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땐 비용보다 이득이 훨씬 크다. 이런 측면에서도 덴마크엔 눈에 띄는 사례가 있다. 회루파브(Høruphav) 지역을 기반으로 영업 중인 슈퍼마켓 체인 슈퍼브룩센(SuperBrusen)이 그 주인공. 슈퍼브룩센 경영진은 화석연료 사용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채집, 식품 냉장이나 매장 난방 등에 활용한다. 남은 열(熱)은 지역사회 빈민 계층 가정 난방용으로 기부한다. 덴마크 중부 도시 헤덴스테드(Hedensted)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냉방 장치 가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채집, 저장했다 난방과 온수가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 이런 체계 덕에 헤덴스테드는 연간 1만 유로(약 1300만 원)의 연료비를 절약하는 한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8톤이나 줄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에너지를 구조적으로 절약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덴마크 국민의 관심은 이 밖에도 손쉽게 발견된다. 기관과 기업, 개인 할 것 없이 관련 기술 개발과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 뿐 아니라 전 과정에 센서·오토메이션·인공지능 등 ICT 요소가 도입돼 효율성과 적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선구적 노하우엔 상당한 값이 매겨져 해외로 수출된다. 2018년 8월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인 동시에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자랑하는 중국 상하이타워 사례가 대표적. 중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스마트빌딩인 이 공간에 스마트 에너지 기술을 제공하는 주체가 바로 덴마크 기업 댄포스(Danfoss)[6] 인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지구온난화 현상의 미래를 일찌감치 내다보고 한발 앞서 준비한 이들의 비즈니스 감각이 낳은 성과라고 해야 할까?

 

첨단 기술, 대안에너지 실용화 과정서 ‘열 일’ 하다

 

‘대안에너지를 개발, 활용하는’ 일은 (그간 다방면에서 노력이 진행돼오긴 했지만) ‘에너지를 아껴 쓰는’ 일에 비해 광범위하고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이 여의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환경 문제를 전혀 유발하지 않는, 진정한 청정(재생)에너지라고 하면 태양∙바람∙조류∙지열 등 대체로 자연 요소를 활용한 것들인데 그 자체만으론 물량이나 안정성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탓이다. 브뢴더슬레유의 복합 에너지 생산 시스템이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브뢴더슬레유 시스템, 정확히 말하면 그 기반 기술을 제공한 알보르히 시스템이 이전까지의 태양에너지 생산 방식과 비교해 혁신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융축 태양에너지 플랜트(condensed solar energy plant)’다. 이 장비를 활용하면 평평한 기존 집광판 대신 U자형 패널로 태양에너지를 채집, 최고 230℃까지 집약시킬 수 있다. 돋보기로 태양열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브뢴더슬레유 수도사업소에 설치된 융축 태양에너지 패널의 조감도(왼쪽 사진)와 실제 전경. (출처: aalborgcsp.com) 

 

다른 하나는 ‘유기적 랭킨 회로(Organic Rankine cycle)’란 기술이다. 랭킨 회로는 닫힌 회로에 열을 투입, 물을 매개로 에너지가 전달되게 해 기계를 움직이는 장치. 스코틀랜드 기계공학자 겸 엔지니어 윌리엄 랭킨[7] 이 처음 제안한 개념이라고 해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유기적 랭킨 회로란 랭킨 회로 내부 물에 유기물을 적절히 섞어 비등점을 높인 후 같은 양의 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다.

 

브뢴더슬레유 시스템은 이 두 원리를 적절히 조합해 가장 많은 양의 에너지를 채집하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으로 이를 저장, 전달함으로써 대안에너지 실용화에 장벽으로 작용했던 부분을 극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런 구조에선 채집 장치 하나만 해도 다양한 부분이 서로 잘 연동, 가동되도록 해야 한다. 흙먼지 등에 의한 오염 방지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생산된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고루 공급되는 것도 중요하다. 각각의 세부 과정이 조화롭게 운용되는 과정에서 ICT가 ‘열 일 하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오래된 문제, 새로운 기술, 위대한 생각이 모여 혁신을 만든다.” 전동 휠(wheel)을 만든 미국 발명가 딘 케이먼(Dean Kamen)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지구온난화 현상과 그 결과로서의 기후변화는 46억 년 지구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문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기술 혁신은 반드시 이뤄진다. 지난해 ITU[8] 가 발표한 정보화 국가 순위에서 덴마크가 아이슬란드∙한국∙스위스에 이어 네 번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저력을 궁금해하다 문득 케이먼의 발언이 떠올랐다. 마냥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패널). 세계기상기구(WMO)와 UN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했으며,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0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 smart metering. 전기 사용량을 모니터링, 공급자와 소비자 간 데이터를 교환함으로써 데이터 수급량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계측 체계

[3] SmartGrid. 가전 기기에 IT를 접목, 전력망을 지능화함으로써 고품질 전력 서비스를 제공하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전력망

[4] Copenhagen CleanTech Cluster. 2016년 유럽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주어지는 ‘레기오스타(RegioStar)’ 상을 수상했다

[5] State of Green. 에너지 저감 사회 구축을 목표로 범(汎)부문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6] 덴마크 노보그(Nordborg)에 본사를 둔 글로벌 에너지 효율 솔루션 기업

[7] William John Macquorn Rankine(1820~1872). 글래스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8]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UN 산하 기구 중 하나로 매년 세계 각국 IT 산업 현황을 조사, 정리해 보고서를 펴낸다